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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공연후기 o
작성일 : 10-03-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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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카
 조회 : 3,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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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icarus104.egloos.com/5105880 [1679] |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비척비척 집에 돌아오다가 문득 든 생각이었습니다. 밝고, 따스하고, 절 위로해 줄 수 있고, 친근한 작품이 필요했거든요. 제게 넌센스는 그런 작품이었나봅니다. 수녀님들 품에 폭 파묻혀서 징징대고 싶어서, 전 이번에도 넌센스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그러고보니 거의 1년에 한 번씩은 꼭꼭 이 성당을 찾게 되는 것 같네요. 보통 일상에 지쳐서요. 이전 후기들을 찾아 읽어보니까 '초죽음이 되어서 문득', '일상에 지쳐서' 찾아갔다는 말이 나오는 걸 보니 제게 넌센스는 딱 그런 작품인가봐요.그러고보니 넌센스 후기는 한 번도 안 빼먹고 꼬박꼬박 썼네요!
그런만큼 이 공연 자체에 대해 쓸 말은 많지 않습니다. 언제나처럼 사랑스럽고 예쁜 공연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요. 그런데 이번에도 느낀 거지만, 제게 '넌센스'는 제가 처음 이 작품을 만났던 옛날의 창조콘서트홀(지하)의 기억이 기본이 되나봅니다. 들어가다 움찔, 놀랐어요. '그리스' 배경도 없었고, KFC 할아버지도 없고, 무대가 왜 이렇게 세련되고 극장은 왜 또 그렇게 넓은 건지 어리둥절했어요. 곧 바뀌었다는 걸 기억해내긴 했지만 말예요. 장소는 바뀌어도 변함없었던 오프닝 영상에는 어쩐지 그리워져서 저도 모르게 킥킥대고 혼자 웃기도 하고, 'Dufficult Transition' 이후의 퀴즈에서는 스스럼없이 손을 들고 퀴즈에 참여하기도 했답니다.(그리고 상품도 받았다지요) 제가 적극적으로 소리지르고 박수치고 깔깔거리며 작품에 참여하는 공연은 많지 않은데, 넌센스는 그런 공연 중 하나입니다. 그냥 수녀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나게 반갑고, 수녀님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어요.
넌센스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작품이 지금은 거의 여자 신인 뮤지컬 배우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결코 쉬운 작품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노래가 굉장히 어려운 편이예요. 어느 수녀 하나 쉽지 않습니다. 엠네지아는 그 중에서도 특히나 넓은 음역폭을 가진 배우가 필요합니다. 성악 베이스의 탄탄한 목소리가 필요하지요. 높은 고음부터 독순술로 노래부르기까지 소화해야 할 수 있는 역입니다. 절정에 해당하는 곡인 'I Could've Gone to Nashville'을 부르는 역이기도 해요. 허버트 수녀는 저음부의 강한 성량이 필요한 역할입니다. 허버트 수녀 역을 맡은 배우가 지금까지 한 번도 절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인데, 조금 과장해서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이 허버트 수녀를 맡은 배우의 역량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허버트 수녀가 잘만 하면 그 전까지 과묵하던 사장님들도 발을 구르며 '아멘'을 외칠 수도 있고, 그 전까지의 모든 사고를 묻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로버트 앤 수녀님은 넌센스의 감초역할을 하는 역이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수녀님입니다. 넌센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넘버(라고 제가 생각하는), 'Growing up Catholic'을 부르는 수녀님이기도 하지요. 레오 수녀님은 쭉 뻗는 고음과 발레가 가능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원장 수녀님은 가장 연기력이 필요한 역입니다. 마지막에 'Rush'를 들이마신 이후의 연기가 지루할 경우 사람들이 웃기는 커녕 '뭐야?'라는 표정으로 뚱하니 무대를 바라보게 되지요. 제가 넌센스 DVD를 지루해한 이유가 바로 원장선생님의 유머에 적응을 하지 못해서이기도 했어요. 넌센스의 넘버들은 경쾌한 곡이 많지만 뜯어보면 목소리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곡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 곡들을 잘 소화해내면 저도 모르게 '굉장하다!'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요. 이번 공연에서는 레오 수녀님을 제외한 다른 분들, 특히 엠네지아 역의 배우님과 허버트 수녀님의 배우님은 정말 굉장해서 다른 관객들도 '배우들이 아주 제대로인데?' '목소리가 너무 예뻐!'라고 웅성대며 나오는 걸 들었어요. 레오 수녀님도 잘 하시긴 했지만, 목소리가 조금 상하신 것 같았어요.^^ 그래도 전 우리나라의 레오수녀님들이 세상에서 가장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4번째의 넌센스지만, 그 때 그 때 새로 발견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에 'So You Want to Be a Nun(수녀가 되고 싶다면)'을 들을면서 '원장선생님께서 그러셨어요. 제가 잘 하면 어쩌면 이 중의 한 사람은 수녀로 지원할지도 모른다고요.'라는 말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어쩌면 이 공연을 본 관객 중 누군가가 몇년 후에 '수녀님'으로 다시 무대에 설지 모른다고. 그랬으면 좋겠다고요. 그리고 만약 제가 능력만 되었다면 기꺼이 저 무대 위에 서고 싶을 것이라고요. 저 무대 위에 서서 제가 느낀 이 위안과 기쁨을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그래서 어쩐지 그 대사가 깊이 와 닿았어요.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그 전까지 지치고 우울했던 기분이 단번에 밝아지는 것을 느꼈어요. 원장수녀님의 모습을 봤을 때, 전 이번 무대에서 가장 즐거운 원장 수녀님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제 생각은 보답을 받았습니다. 엠네지아 수녀님을 보면서 귀엽다고 꺄르륵 거렸고, 레오 수녀님의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서 허버트 수녀님과 함께 웃었습니다. 레오 수녀님이 계속 전화기를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그 전화 받을 수는 있어요?'라고 농을 던지던 허버트 수녀님은 이 무대에서 제 마음을 더없는 훈훈함으로 녹여준 분입니다. 아, 전 정말 허버트 수녀님이 좋아요. 무뚝뚝하고 거친 것 같아도 세삼하고 자상하게 토닥토닥 어린 수녀들을 챙겨주는 것 하며 엠네지아 수녀에게 버럭 소리 지르고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원장선생님을 툭툭툭 위로해주는 모습도 너무 좋아요. 로버트 앤 수녀님은 그 분이 로버트 앤 수녀님이시라는 것만으로도 제게 사랑받기에 충분했어요. 이번에야말로 'Growing up Catholic'에서 울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다짐했지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툭, 툭 떨어져내렸지요. 매번 사고만 치고 돌아다니는 것 같아도 로버트 앤 수녀님의 마음은 항상 진지하다는 걸 알아요.
아무리 같은 대본으로 공연하는 작품이라도 항상 같을 수는 없겠죠. 소소하게 빠진 부분들도 있고, 완전히 바뀐 부분도 있습니다. '힙합 수녀'는 저번 버전부터 들어갔던 것 같고, Just a Coupl'a Sisters 에서 허버트 수녀님과 원장 수녀님이 '메리'라는 말로 장난치는 걸 무척 좋아했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같은 커플을 찾아봅시다'로 바뀌었더라고요. 이것도 나름 재미있었어요. '수상한 요리책'부분은 조금 간소화되었고(이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뭐라고 딱 찝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엠네지아 수녀님의 '잊어버렸어요'는 조금 약해진 것 같아서 살짝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유쾌하고 귀여웠어요. 귀여우니까 모든 게 용서가 됩니다. 엠네지아 수녀님의 귀여움이 빛을 발하는 건 역시 'Difficult Transition'다음 퀴즈 시간일 거예요. '자기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보세요.' '형제님......왜 이 분에게 도전하지 않으세요?'는 정말 들을 때마다 웃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참 이상하죠. 이미 아는 농담인데 거기에 깔깔거리는 저는 머리가 나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때요? 즐거웠는 걸요.
아무쪼록 이 수녀원이 오래오래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 수녀원에서는 줄리아 수녀는 매번 죽음의 야채수프를 만들고, 엠네지아 수녀는 계속해서 까먹고, 원장 수녀님은 대형 벽걸이 TV로 DVD를 보고, 로버트 앤 수녀님은 그런 원장 수녀님의 복장을 계속해서 뒤집겠지요. 레오 예비 수녀님은 뒤뜰에서 춤을 출 거고, 허버트 수녀님은 그런 수녀들을 어르고 달래가며 수녀원을 끌어갈 거예요. 어쩌면 원장 수녀님 몰래 스님들과 정말로 미팅을 할지도 모르고요.(나중에 안 원장 수녀님은 분명 '왜 자길 안 끼워줬냐고' 화를 낼 게 분명해요!) 전 정말로 저 수녀원이 좋아요. 그리고 저 같은 사람들이 또 있을 거라고 믿어요. 힘들 때마다 이 성당을 찾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요. 힘들 때 봤던 작품을 잊지 못하고 또 찾고 또 찾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필요할 때마다 다시 그 작품을 볼 수 있지는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전 넌센스가 오래오래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이기적인 사이비 신자를 위해서라도요. 웃음과 기쁨을 두 팔에 가득 안고 나오며, 다음에 또 이 성당문을 두들길 날이 은근히 기대가 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성당이 있다면 조금은 세상에 부딪치고 치이고 깎여도 좋을 거예요. 그럴 때마다 이 성당에서는 유쾌한 수녀님들이 두 팔을 벌리고 기다려 줄 테니까요.
(덧) 그리고 이번에 또 새롭게 귀에 들어온 부분은 'Holier Thant Thou'중에서 '성녀 베르나뎃'을 언급하는 부분이었어요. 문득 저 성녀를 소재로 한 카톨릭 뮤지컬 'Vision'에 스티브가 출연했다는 게 떠오른 거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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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센스 
